오늘은 프랑스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부활절 방학이라 집을 비워둔 탓에 냉장고에 먹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일상으로 복귀 후 저도 늦게 귀가하고, 차를 가지고 나가는 우리 집 프랑스 남자에게 장을 좀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퇴근 후 한아름 봉지를 들고 들어오는 이 남자.
파리의 한국 마트에 들러서 장을 봐왔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상승현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파리도 예외 없습니다.
자주 가던 스타벅스 메뉴 가격도 오르고, 식당들 메뉴도 조금씩 조금씩 가격이 올랐더라고요.
특히 자주 갔던 파리의 한국 반찬가게도 가격이 올라서, 요즘엔 발길이 뜸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한국마트에 가서 프랑스 남자가 혼자 사 온 것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습니다.
평소에 한국마트에 갈 때는 저와 함께 가서 뒤에서 늘 바구니만 들어주었는데, 혼자 가서 사 온 것은 무엇일까요?
프랑스 남자에게 장보기를 시켰더니 사 온 것들
!!
이 남자가 먹을 것들을 잔뜩 사 왔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소떡소떡 두 개.
같이 먹을 파전.
아래 사진에 보이는 군만두.
이것들을 전식(엉트레 Entrée)으로 먹자며 사 왔습니다. 프랑스는 식사를 전식-본식-후식 순으로 먹습니다.
전식으로 먹기에 많아 보이는데, 자기가 배고프니 다 먹을 거라며 웃습니다.
떡볶이보다 소떡소떡을 더 좋아하는 우리 집 프랑스 남자.
가끔씩 한인마트에서 소떡소떡을 사 먹긴 했는데 4.5유로라니...! 한 개에 육천 원이 넘는 소떡소떡이라니 ㅠㅠ
딱 봐도 건조해 보이는 군만두인데 굳이 사 온 5.3유로짜리 만두.
집에 냉동만두가 있었는데... 아.. 제가 같이 갔었으면 말렸을 텐데요.
이 남자가 집에 들어오면서 "나 지금 들어가. 밥 좀 미리 해주겠니?"라는 문자도 보내서, 뭘 사 오길래 이러나 싶었는데 김치랑 반찬도 몇 개 집어왔습니다.
사 먹는 김치도 7유로 정도로 비싸져서 종종 중국산 배추로 맛김치를 집에서 담가먹었습니다. 겨울 지나니 배추도 마트에 안 보이고 담기 귀찮아서 한동안 김치를 안 먹었는데, 오랜만에 김치 생각나지 않냐는 프랑스인.
저는 김치는 썰어먹기 귀찮아서 평소에 썰어진 맛김치를 사 먹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남자가 골라온 건 포기김치.
물론 포기김치랑 맛김치 차이도 모르고 사진만 보고 골라왔을 듯합니다. 가위로 잘라먹으면 되니까 괜찮아요!
골라온 반찬들이 저를 웃게 만들었는데,
무말랭이, 멸치볶음, 취나물!!
취나물은 같이 먹은 적이 없는데, 사 왔더라고요. 덕분에 취나물이 불어로 pousse aster라고 쓰인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런 나물들이 프랑스에 오래 살면서 가끔씩 생각났는데, 어떻게 알고 사 왔을까? 싱기방기.
그러나 아껴먹다가 쉬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이런 반찬은 사 오면 부지런히 먹어야 합니다!!
가격보고 놀래버린 멸치볶음.
9.42유로로 만 이천 원이 넘는 금(!) 멸치였어요. 본인도 가격표 안 보고 먹고 싶은 걸 골랐다는데, 나중에 보고 깜놀.
등짝을 날릴 뻔했지만 ㅋㅋ 본인이 먹고 싶었다는데요. 뭐.
외국인들이 멸치 보고 충격받는다고 하던데, 엔쵸비를 즐겨먹는 프랑스인이라 그런지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남자의 최애 반찬 무말랭이. 무말랭이의 씹는 맛을 아는 프랑스 사람입니다.
파리 한국 마트에는 한국 빵집(보리수)의 빵도 팝니다. 그의 픽은 소보로 빵과 피자빵. 각각 두 개씩 사 왔어요.
특히 피자빵을 좋아하는데, 빵 위에 올려진 양파 토핑이 씹는 맛이 살아있어서 좋다네요. 레시피까지 궁금하다는 프랑스인.
집에 라면들이 똑 떨어졌는데, 사 온 라면 보고 또 한 번 빵 터졌습니다.
본인의 취향이 많이 담긴 걸 사 왔네요. 짜파게티를 좋아라 하거든요.
제가 불닭볶음면을 좋아하니 사 왔다는데, 핵 불닭볶음면을 사 왔습니다.
하.. 나 이거 먹고 죽을 뻔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건 그냥 불닭볶음면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네가 사온 건 핵! 뉴클리어 불닭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건 검은색! 그리고 분홍색(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도 좋아해. 이렇게 색깔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려고 이것도 두 개씩 집어왔네요.
또 양념 치킨 좋아하는 프랑스인이 사 온 비비고 순살 양념치킨.
디저트에 진심인 사람이라 후식도 빠짐없이 사 왔습니다. 녹차 호떡과 찹쌀떡!
프랑스인에게는 떡보다 모찌라는 단어가 익숙한데요. 그는 종종 일본 빵집에서 사다준 모찌를 좋아하거든요. 저에게는 일본 모찌는 너무 달고 떡도 얇아서 한국 떡을 선호하는데, 저를 위해 사다 주었네요.
프랑스 한국 마트에는 이 외에도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식품도 파는데요. 양념을 재운 제육볶음을 본식으로 생각해서 사 왔더라고요. 이건 바로 냉장고에 넣느라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이거 먹자고 밥을 미리 해달라는 부탁을 한 거였습니다.
이렇게 다해서 100유로가 넘는 장을 봐왔습니다.
같이 갔으면 그냥 내려둘 물건이 많았을 텐데.. ㅋㅋ 물가가 많이 올랐구나 체감되는 장보기였네요.
한국인들이 많은 한인마트에서 혼자 장을 보기 조금 쑥스러웠다는 프랑스 남자.
바로 먹어야 할 소떡소떡, 파전, 군만두를 전식(!)으로 먹으니 배가 차서 제육볶음은 다음에 먹기로 하고, 미리 해둔 밥에 사 온 반찬으로 덕분에 오랜만에 한식으로 배불리 식사했습니다.
다행히 한식을 좋아하는 프랑스 남자랑 살아서 아직까지 별문제 없이 잘 먹고사는 국제커플의 일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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